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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강남 재건축 분양단지로 화제를 모은 서울 서초구 방배그랑자이. 지난 26일 낮 3시경 모델하우스를 찾았을 때 번호표를 뽑고 청약 상담을 받은 방문객은 300명을 조금 넘었다. 비가 내린 탓인지 한산한 모습이었고 무엇보다 모델하우스 안은 두시간 넘도록 젊은 손님을 보기가 힘들었다. 대부분이 40대 중년이나 50~60대 은퇴세대, 70~80대 어르신도 적지 않았다. 20~30대로 보이는 손님은 오간 사람을 통틀어도 10명 안팎이었다.
사진=김노향 기자
◆10억원 이상 현금 가진 사람 많네
교통·학군이 뛰어난 방배그랑자이는 투자 후 미래가치가 보장된 흥행 보증수표로 손꼽히지만 서민이나 웬만한 중산층도 쉽게 청약하기가 어렵다. 분양가는 3.3㎡당 평균 4687만원으로 가장 작은 전용면적 59㎡가 10억1200만~12억3000만원이다. 84㎡는 최고 17억3600만원이다. 분양가 9억원 초과는 중도금대출과 건설사의 연대보증도 금지돼 청약하려면 계약금을 포함 10억원 정도를 현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아니면 신용대출, 제2금융권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이날 모델하우스를 찾은 60대 후반의 김정은씨(가명)는 실거주를 위해 무순위청약과 1순위청약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살던 집도 처분했는데 대형병원이 가까운 새아파트에서 노년을 보내고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 없이 청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항영 선경세무법인 대표세무사는 "최근 자산이 수백억대, 수천억대 있는 자산가도 방배그랑자이 청약을 문의할 정도"라고 말했다.
모델하우스에서 청약상담을 받은 부동산 전업투자자 양은정씨(34)는 "방배그랑자이 분양가가 높다는 사람도 있는데 미래가치를 생각하면 비싼 금액이 아니다"라면서 "서리풀터널 개통으로 강남 이동시간이 5분대로 단축돼 부동산시장이 아무리 정체기라도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처럼 미혼이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청약기회가 없기 때문에 무순위청약이 가능한 것도 방배그랑자이를 선택한 이유"라고 말했다.
방배그랑자이는 우면산과 방배역 사이 들어선다. 지하철 2호선 방배역 역세권, 상문고·서울고·동덕여고·서초고 명문학군, 내방역-서초역을 잇는 서리풀터널 개통 등의 호재도 있지만 방배그랑자이의 흥행 키포인트는 사전 무순위청약이다. 방배그랑자이는 2일 사전 무순위청약을 실시하고 5일 후인 7일 1순위청약을 받는다.
올 2월 도입된 사전 무순위청약은 서울 미분양·미계약 시 잔여물량에 대한 당첨기회를 주는 제도다. 1~2순위청약자가 미달되거나 자금부족으로 계약을 포기한 경우 잔여물량을 배정받으려고 밤샘 줄서기 등을 하던 불공정거래를 없애려고 모든 청약을 인터넷화했다. 무순위청약은 청약통장이 없어도 되고 주택보유 수도 무관하다.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을 지원하는 청약제도가 결국 현금부자들에게 기회를 늘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같은 날 분양을 시작한 디에이치 포레센트는 손님이 더 적었다. 디에이치 포레센트는 일반분양이 62세대로 적은 데다 사전 무순위청약을 실시하지 않는다. 바로 맞은 편 들어서는 디에이치자이 개포의 경우 지난해 3월 분양 당시 모델하우스 문을 열기 전 구름인파가 몰려 대기줄이 수킬로미터에 달하는 진풍경도 연출한 바 있다.
방배그랑자이는 인테리어 고급화와 미세먼지 청정시스템 등도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실제 모델하우스를 방문한 손님들의 반응은 다소 아쉬웠다.
30대 주부 김은정씨(가명)는 "84㎡가 요즘 새아파트에 비해 비좁은 느낌이라 아이 둘을 데리고 살기는 힘들 것 같다"면서 "거실 대비 드레스룸 등의 숨은 공간이 많아 효율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분양가 규제가 약해져 분양가가 올라가고 주변 아파트시세는 떨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로또아파트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면서 "서울에서 미분양·미계약이 속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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