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
- 올 2월 도입돼 청약통장·보유주택수 상관없이 기회
- 1주택자 갈아타기·다주택자 매수 통로로 이용
- 가점 낮은 무주택자 내집 마련 취지 무색
- "당첨 취소 빈자리 메꾸도록 예비당첨자 늘려야"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사실상 청약에 참여하기 어려운 다주택자나 갈아타기 수요인 1주택자는 ‘줍줍’(미계약분을 줍고 또 줍는다는 의미) 기회를 기다리면 된다. 미계약률이 40%에 달한 ‘홍제역해링턴플레이스’는 ‘홍린턴’이라는 애칭까지 붙을 정도다.”(투자자 A씨)
“청약가점이 30점 후반대로 높지 않아 서울에서 인기 있는 웬만한 아파트에 당첨되기 쉽지 않다. 경쟁률이 세 자릿수에 달하는 무순위 청약은 더욱 가망이 없다.”(아이 둘을 둔 30대 직장인 B씨)
정부가 무주택자 위주로 청약제도를 개편했지만 1주택 이상 보유한 현금부자만 웃고 있다. 서울 내 청약 단지에서 미계약분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무순위 청약으로 다주택자에게 기회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가점 낮은 무주택자에게 기회의 문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방배그랑자이’ 모델하우스 내부에 중도금 대출 유의사항과 사전 무순위 사전 접수 안내문이 걸려 있다.(사진=김기덕 기자)
◇늘어나는 미계약 물량 ‘3순위’ 청약자에게 돌아간다
지난해 청약제도 개편으로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무순위 청약은 사실상 3순위 청약으로도 볼 수 있다. 아파트 단지가 1·2순위 청약 당첨자와의 계약을 진행하고, 예비당첨자까지 순번이 돌아가고도 남은 물량을 배분할 수 있도록 본청약의 사전에 혹은 사후에 접수하는 방식이어서다. 무순위 청약은 청약통장이 필요 없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 요인으로 꼽힌다.
무순위 청약에 대한 우려는 최근 미계약 물량이 증가하는 데서 비롯됐다. 이목을 끌었던 서대문구 홍제역해링턴플레이스는 지난달 말 정당계약에서 계약하지 않은 가구가 일반분양 419가구 가운데 174가구로 미계약률이 41.5%에 달했다.
잔여가구는 청약 1순위에서 밀렸거나 주택 한 채 이상을 보유한 사람의 몫으로 돌아갔다. 무순위 청약 사후접수에서 174가구에 무려 5835명이 몰렸다. 평균 경쟁률이 33.53대 1로 본 청약 경쟁률 11.14대 1을 훌쩍 뛰어넘었다.
같은 시기 무순위 청약 사후접수를 받은 경기 안양시 ‘평촌래미안푸르지오’도 사정은 비슷했다. 본 청약에서 일부 주택형은 1순위 해당지역에서 마감하지 못하고 기타지역까지 접수 받으며 평균 경쟁률이 4.43대 1을 기록한 데 비해 사후접수에서 234가구 공급에 3135명이 청약해 평균 경쟁률이 13.40대 1로 집계됐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지난해 말 청약제도가 무주택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갈아타려던 1주택자의 불만이 가장 커졌는데, 청약 통장이 없어도 가능한 무순위 청약이 만들어지면서 사실상 새 시장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자료=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단위: %)
◇예비당첨자 더 뽑을까…미달 단지 늘 수도 있어 우려
국토교통부 역시 이 같은 청약시장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간 잔여가구는 모델하우스 줄 세우기, 개별 시스템 등으로 추첨하다가 무순위 청약이라는 공식 시스템으로 배분하기 시작한 것은이번이 처음이어서다.
일각에선 예비당첨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예비당첨자는 1·2순위 청약 당시 정해진 가구 수의 80%를 더 뽑도록 해 잘못된 가점 입력, 자격 미비 등으로 당첨이 취소되거나 계약하지 않는 당첨자의 빈 자리를 메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예비당첨자를 더 뽑으면 무순위 청약 대신 1·2순위 자격을 지닌 청약자에게 기회를 더 줄 수 있는 셈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청약 가점이 높지 않고 자금 여유가 없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1순위 자격자에게 청약 기회를 더 줄 필요가 있다”며 “주택 보유 수에 상관없이 기회를 주는 무순위 청약보다 예비당첨자를 늘리는 것이 무주택자 위주로 개편한 제도 취지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현재 무순위 청약을 비롯한 청약제도 개편에 따른 변화 사항을 조사하고 있다”며 “다주택자의 청약 비중이 높은지, 계약률이 왜 떨어졌는지 등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제도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계영 (kyung@edaily.co.kr)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