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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시장을 혼돈 속으로 밀어 넣은 ‘로또아파트’ 논란에도 정부가 더 강력한 분양가 규제책을 꺼내들었다. 일각에서는 무주택 서민과 중산층을 살리기 위한 분양가 규제제도가 오히려 부자들의 자산증식을 돕고 시장을 교란시킨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아파트 분양원가 자체에 거품이 있다고 주장하며 궁극적으로 분양가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 등도 적지 않다. 문재인정부 3년차, 부동산정책에 전반적인 점검이 요구되는 상황에 분양가 규제로 인한 각종 부작용 완화 방안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분양가 규제’ 불편한 진실-③] 후분양 후폭풍 감당은 소비자 몫?
정부가 분양가 심사를 강화하자 재개발·재건축(정비사업)조합과 건설사 등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조합은 기존대로 선분양을 하자니 시세 대비 낮은 분양가 책정이 못마땅하고 시공사는 후분양에 나서자니 중도금으로 충당하던 시공비 조달이 어려워 자금 압박이 우려된다. 대체로 분양일정을 뒤로 미루며 추이를 지켜보는 분위기인데 불똥은 소비자에게 튈 조짐이다.
◆분양일정 줄줄이 연기… 이유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 산정 기준을 변경하자 지난 6월에 분양할 예정이던 단지들이 대거 일정을 연기했다.
부동산정보서비스 직방에 따르면 6월 분양예정 단지는 58곳, 4만8240세대며 이 중 일반분양은 3만5507세대였지만 실제 분양이 진행된 곳은 29개단지, 2만741세대(43%), 일반분양 1만3578세대(38%)로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울시내 한 아파트 건설현장. /사진=뉴시스 DB
6월 분양계획 단지 중 분양가 산정문제가 불거진 ‘래미안 라클래시’(삼성동 상아2차 재건축)는 결국 후분양 방식을 택했고 ‘힐스테이트세운’(세운상가재개발)과 ‘브라이튼여의도’(아파트) 등도 분양일정 조정에 들어갔다.
6월 분양예정 물량이 대거 연기되며 전통적인 분양 비수기인 7월 분양시장은 공급물량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7월에는 54개단지, 3만9176세대 중 3만398세대가 일반분양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개단지, 2만2708세대, 일반분양 기준으로는 1만8276세대가 더 늘어난 수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6월 분양예정 물량이 대거 7월로 연기돼 휴가철 비수기이던 7월 분양시장은 공급 예정 물량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다만 고분양가 관리지역에서의 분양가 산정문제가 여전한 만큼 7월 분양단지도 일정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건설사 “후분양 부담된다”
원하는 분양가를 받기 어려워지자 각 정비사업 조합과 건설사는 후분양 카드를 꺼냈다.
후분양은 아파트를 짓기 전 분양하는 선분양과 달리 골조공사의 3분의2(약 80%) 이상을 지은 뒤 소비자에게 분양하는 제도다. 건설사들은 선분양을 통해 받는 중도금으로 시공비용을 충당했지만 분양가 규제 여파에 조합이 원하는 금액으로 분양보증을 발급받지 못하자 자금 부담이 들지 않는 선에서 후분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분양가 심사 강화 뒤 후분양 첫 테이프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래미안 라클래시(상아2차 재건축) 조합이 끊었다. 상아2차 재건축 조합은 대의원 회의에서 고민 끝에 래미안 라클래시의 일반분양 물량 115가구를 후분양하기로 결정했다.
과천주공1단지의 경우 HUG의 분양가 제한을 피해 올초 진행된 조합 총회에서 일반분양 509가구(전체 1571가구)를 후분양으로 전환했다. 이 단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HUG와 분양가 협상을 진행했지만 조합이 제시한 분양가를 HUG가 거부해 후분양을 택했다.
각 조합 측이 후분양에 떨떠름한 입장이지만 건설사 역시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시공사는 자금마련 부담이 큰 후분양에 회의적이지만 조합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100~200세대의 후분양은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반면 후분양 전환 자체를 꺼리는 목소리도 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인기지역인 서울에서조차 미분양이 발생한 마당에 후분양을 하면 자금 압박에 따른 실적 악화로 귀결될 수 있다”며 “특히 적은 물량일지라도 후분양이 시장에 정착되면 전체 물량에 대한 후분양 전환 논의가 이뤄질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피해는 또 소비자가 진다
고분양가 논란으로 촉발된 분양가 개정 후폭풍이 일부 단지의 후분양 전환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현재 HUG 분양가 심사 강화로 쓴맛을 들이켠 각 정비사업 단지들은 분양일정을 연기하거나 후분양 카드를 꺼내며 분위기를 살피는 모습이다. 개포주공4단지, 서초무지개아파트 등 다수의 재건축 단지의 경우 분양 일정도 잡지 못하며 전체 시장 분위기가 위축됐다.
문제는 이 같은 분양 지연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9·13부동산 대책 이후 내림세를 보이던 집값이 최근 상승 조짐을 보인 것은 공급 지연에 따른 희소성이 부각됐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 팀장은 “일반 사업장은 자금 부담 때문에 후분양 전환이 어렵지만 정비사업 조합의 경우 원하는 분양가를 받지 못하니 갈수록 후분양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당장 집값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계속해서 공급이 지연되면 결국 상승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남수 신한 PWM 도곡센터 PB팀장도 비슷한 생각. 그는 “자금 부담을 우려하는 건설사들이 이른바 ‘되는 사업장’만 선별해 사업 안정성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되면 당장은 아니라도 3~4년 뒤엔 공급 부족에 따른 희소가치 부각으로 집값이 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창성 기자 solral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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