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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절체절명 위기에 빠졌다.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0.4%에 그쳐 연간 2% 성장이 물 건너갔다.
사실상 1%대 성장률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이다.
연간 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한 것은 경제 개발이 본격화된 1960년대 이후 단 세 차례에 그친다. 2차 오일쇼크가 터진 1980년(-1.7%), 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5.5%),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뿐이다.
당시만 해도 예측 불가능한 대외 변수나 유동성 위기 등 비교적 짧은 기간에 나타난 경제 충격 영향이 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수출과 내수 부진, 기업 생산성 악화 같은 누적된 내부 요인으로 경제 활력이 서서히 가라앉은 결과라 위기의식이 크다.
1% 성장률 시대가 오면 우리 삶 전반이 달라질 전망이다.
더 이상 은행 예적금 상품에 가입해도 쏠쏠한 이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영업자가 대거 폐업하고 실업자, 노숙자 수가 급증하는 등 사회 문제가 불거질 우려도 크다. 1% 성장 시대 변화상을 살펴봤다.
▶내년 0%대 금리 현실화
▷수익 좇아 해외 투자 늘어날 듯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 빠지지 않으려면
한국은행이 ‘제로금리’까지 내리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조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16일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1.25%로 낮추면서 ‘제로금리’ 시대가 열릴지 관심이 쏠린다. 시장에서는 내년에도 경제성장률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기준금리가 더 낮아져 ‘0%대 금리’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벌써부터 금리가 연 0%대인 적금이 등장했다.
Sh수협은행은 최근 예적금 금리를 상품에 따라 0.2~0.5%포인트 내렸다고 밝혔다.
수협은행 ‘스마트one적금’의 경우 1년 만기 기준 기본금리가 0.4%포인트 인하돼 연 0.9%다. BNK부산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도 주요 예적금 상품 금리를 떨어뜨리면서 0%대 금리 상품이 쏟아질 전망이다.
머지않아 유럽처럼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맞을지도 모른다.
덴마크 유스케은행은 예금 계좌에 15억원을 넣어두면 1년 후 14억9100만원을 돌려준다.
이자는커녕 오히려 예금액의 0.6%를 보관료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스웨덴, 일본 등 세계 각국 주요 은행도 계좌 유지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실제 일본(-0.1%), 스웨덴(-0.25%), 덴마크(-0.65%), 스위스(-0.75%)는 기준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한국처럼 수출 비중이 높은 호주도 올 들어 세 차례 금리를 내려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치인 0.75%까지 낮췄다.
우리도 이제껏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초저금리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초저금리 시대가 오면 100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부동자금이 수익률 높은 상품으로 대거 이동할 가능성도 높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부동자금 규모는 올 6월 말 기준 989조6795억원에 달한다.
지난 1월 말(951조7477억원)보다 38조원 불어난 규모다.
부동자금은 현금이나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일정한 투자처에 묶여 있지 않아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을 말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일단 국내 대신 해외 투자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일본 ‘와타나베 부인(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 외환 투자자)’ 같은 사례가 급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당연히 국내 증시에는 찬바람이 불 전망이다.
1%대 성장률 시대가 도래하면 기업 경영 여건이 악화돼 주가도 하락세를 보일 우려가 크다.
일본 경제보복, 미중 무역분쟁 등 글로벌 이슈에서 극적인 반전이 이뤄지지 않는 한
증시는 박스권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경기민감주·수출주 비중을 줄이고 경기방어주·내수주·배당주 비중을 늘리라는 조언을 내놓는다.
그나마 국내 상품 중 소액으로 부동산에 간접투자하는 상품인 리츠나 인컴펀드가 인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일례로 롯데리츠는 최근 일반 투자자 대상 청약에서 63.3 대 1이라는 사상 최대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반 투자자 청약 물량에만 4조7600억원이 몰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인컴펀드 역시 초저금리 시대에 눈길을 끄는 상품이다.
주로 채권이나 고배당주, 리츠, 부동산 관련 상품 등 일정한 수입(인컴)을 제공하는 자산에 투자한다. 증시 흐름과 무관하게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 장점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인컴펀드에 1조3000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같은 기간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에서 7146억원이 빠져나가고 해외 전체 주식형 펀드에서 6681억원이 이탈한 것과 대조된다.
실제로 설정액 10억원 이상 인컴펀드 140개의 올해 수익률은 평균 8.86%를 기록했다.
오광영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인컴펀드는 투자자산에서 발생하는 꾸준한 인컴이 안전판 역할을 해 인기가 높다. 저성장 시대에 인컴펀드 투자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시장 직격탄
▷주택 양극화 심화, 수익형 상품도 불안
‘제로금리’ 시대가 도래하면 부동산 시장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당장은 대출금리가 떨어져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좋은 만큼 일시적인 부동산 투자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매달 또박또박 임대수익을 올리는 상가, 오피스텔, 꼬마빌딩 등 수익형 부동산 인기가 높아질 전망이다.
은행 이자보다 높은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는 덕분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수익형 부동산 시장도 호황을 장담할 수 없다.
디플레이션을 맞으면 개인은 물가가 더 내려갈 것을 기대해 소비를 미루고 기업은 투자를 거둬들여 고용 감소 → 실업자 증가 → 가계소득 감소 → 소비 침체 악순환에 들어간다.
가계 입장에서는 자연스레 자산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덩달아 매달 임대수익을 올리는 수익형 부동산도 공실 위험이 높아지고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
상가, 오피스텔의 경우 취득세가 4.6%로 일반 주택(1.1%)보다 훨씬 높다는 점도 변수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로 수익형 부동산 공급이 계속 늘어나지만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실물경제가 침체되면 상가, 오피스텔 공실이 늘어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주택 시장은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
서울 강남권, 도심 등 입지가 좋은 지역 신축 아파트 매매가는 상승세를 이어가는 한편 교통이 불편하고 개발 호재가 없는 외곽 지역 노후 아파트는 하락할 우려가 크다.
부유층 수요가 몰려 3.3㎡당 매매가가 1억원을 넘는 랜드마크 아파트가 속속 등장하는 반면
미분양에 시달리는 지방 외곽 아파트는 더욱더 찬밥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정부 규제에도 입지가 좋은 서울 재건축 초기 단지는 ‘똘똘한 한 채’ 수요가 몰려 계속 인기를 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1% 성장률 시대에는 금, 은 등 안전자산 몸값이 더욱 높아진다.
특히 안전자산 대표주자로 꼽히는 금투자로 자금이 몰려들면서
‘골드러시(Gold Rush)’가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되는 KRX 금현물 가격은 지난 연말 4만5970원에 그쳤지만
올 하반기 6만원을 넘어서며 30% 이상 뛰었다.
세계 경기 침체 우려에 미중 무역분쟁까지 겹치면서 각국 중앙은행들도
금을 잇따라 사 모으는 중이다.
세계금위원회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 규모는
지난해 657t으로 5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경기 부진으로 세계 중앙은행의 통화완화 정책이 지속되면 금가격은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얇아진 지갑에 움츠러드는 소비
▷자살자·노숙인 증가…사회 문제 급증
경기가 침체할수록 국민 지갑 사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지사.
내수 부진 → 기업 고용 축소 → 가계소득 감소 →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이다.
1% 성장률에 진입하면서 국내 소비가 극심한 부진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에서도 과거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1991년 3.2%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일본 경제성장률은 1992년 0.8%로 추락했다.
이후 2003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 0.97%를 기록했다.
이때 일본 가계소득은 1991년 48조2000억엔에서 2003년 8조3000억엔으로
약 83% 하락한 바 있다.
한국도 1%대 성장률 국면에 접어들 경우 일본과 같은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근래 얼어붙은 소비자심리가 이를 대변한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8.6이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자의 체감 경기를 보여주는 지표다.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소비자심리가 장기 평균(2003∼2018년)보다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 5월 이후 줄곧 100 미만을 유지해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소비자심리지수가 6개월 연속 100 이하라는 사실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금융위기나 외환위기 수준”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가계소비를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인 임금 수준도 낙관적이지 않다.
올해 근로자 임금 상승률은 기업 수익성 둔화와 주 52시간 근로제 확산으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코스피 상장사의 상반기 평균 영업이익 증가율은 전년 동기보다 37%나 줄었다.
쪼그라든 기업 성적표 영향으로 임금 상승률 역시 지난해 5%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3%대로 낮아졌다. 특히 정부가 내년 팽창 예산을 계획하는 가운데 재정확대가 오히려 민간소비를 위축시키는 구축효과를 불러올 우려도 크다.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채우기 위해 세입을 확대하면 민간소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내수가 부진하면 당연히 자영업 시장은 직격탄을 맞는다.
최근 매경이코노미가 조사한 ‘프랜차이즈 다점포 조사’에도 자영업자들의 어려운 상황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조사 결과 투자형 점주들이 운영하는 다점포는 물론 가맹점 출점도 대거 둔화 또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프랜차이즈 출점이 부진한 가운데,
가게 하나만 운영하는 생계형 점주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점에 나선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김천구 대한상공회의소 연구원은 “민간소비가 활기를 띠기에는 구조적인 제약 요인이 많다.
내년 민간소비 성장률은 경제성장률을 밑돌 가능성이 높고 평균 소비성향 역시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공공부문이 아닌 민간부문 일자리 확대를 통해 소비 회복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저성장에 진입한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포착되는 현상은 사회 문제가 급증한다는 것이다. 경제 문제나 생활고로 자살자 수와 노숙인이 늘어나고 혼인율과 출산율이 크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이미 OECD 국가 자살률 1위 국가고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명이 채 안 된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지금보다 더 낮아져 1%대에 진입한다면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이부영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저성장에 진입하면 소득 양극화와 각종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 생활고에 출산율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 시장경제 전체가 비활성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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