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
#1. 지난 5월 당시 서울 강남에서 선보인 첫 재건축 분양단지로 관심을 모은 서초구 ‘방배그랑자이’. 모델하우스에서 만난 양모씨는 자신을 ‘부동산 전업투자자’라고 소개했다. 양씨는 모델하우스를 찾은 300여명의 방문객 중 10명 안팎인 30대였다. 10억원이 넘는 분양가로 중도금 대출이 안돼 당시 모델하우스 방문자들은 은퇴세대나 고령자, 부모를 앞세운 젊은 층이 대부분이었다. 홀로 모델하우스를 찾은 양씨는 “미혼이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청약기회가 없어 무순위청약이 가능한 방배그랑자이를 선택했다”며 “서울 아파트를 여러 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최초 투자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냐는 질문에는 답을 피했다.
서울 아파트를 사들인 30대의 심리는 무엇일까. 단순히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지만 그보다 수십년 동안 월급을 모아도 갖기 힘든 ‘로또의 꿈’이 더 크다는 의견이다. 강남에 3.3㎡당 1억원짜리 아파트가 등장했음에도 한국갤럽 조사연구소 설문에서 20~30대 절반은 지금보다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는 결과도 이런 현상을 뒷받침한다.
◆부모로부터 9000만원 이상 받으면 증여세 물어야
부동산114에 따르면 11월 현재 서울 아파트의 3.3㎡당 매매가격은 2735만원으로 84㎡(전용면적) 기준 약 6억8300만원이다. 현행 무주택자 기준 주택담보대출한도(LTV)인 집값의 40%를 빚내더라도 약 4억원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 여의도 등은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4억원의 자본금은 아파트값 평균을 기준으로 해도 최소 수준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부동산시장에 30대가 등장한 것은 수요의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로 볼 수도 있지만, 일부는 ‘부의 대물림’으로 계층 간 위화감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는 30대 급여생활자로선 10억원대 아파트를 구입하기 어렵다보니 부모의 지원을 받거나 과도한 빚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대출이 많은 경우 집값 하락시기에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우려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현금을 증여하는 경우 5억원 기준 증여세는 1억원(20%)에서 공제를 제외한 약 9000만원이다. 증여세를 내지 않고 증여할 수 있는 자금 한도는 자녀 나이가 10세 전 2000만원, 20세 전 2000만원, 30세 전 5000만원 등으로 총 9000만원이다. 9000만원 이상의 증여는 세금을 내야 한다.
강남 지역 한 세무사는 “최근 세무상담을 의뢰한 고객 중에 결혼 전 주택 구입자금으로 부모에게 증여받을 때 절세를 문의하는 사례가 급증했다”며 “금액이 크다 보니 금전적 여유가 있는 경우 양가 부모님이 수억원씩 지원하는 추세인데 합법적인 선에서 최대한 세금을 아낄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불법과 편법의 경계를 탄다는 지적이 잇따라 정부는 강남과 용산 등의 주택자금 계획서를 합동조사하고 있다.
30대가 자산을 축적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동산을 사게끔 만드는 환경도 문제다. 과거 세대는 월급을 모아서 아파트를 샀지만 월급을 모으는 속도보다 서울 아파트값이 오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보니 부모 지원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사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장은 “최근 몇년간 진행된 집값 상승기에 가장 소외됐던 계층은 집을 갖지 못한 30~40대”라며 “지금이 아니면 영영 내집마련을 할 수 없다는 불안에 미래소득을 담보로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소득이 줄어들거나 낮은 금리가 다시 오르면 결국 모아둔 자산이 없는 젊은 층은 무리해서 낸 빚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다. 과거 하우스푸어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 또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자산 대비 부동산자산의 편중은 심각한 구조적 문제로 국가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의견이다.
한국은 전체 국부의 85.5%가 부동산이다. 일본의 77.4%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고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부동산자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7배 수준에 달해 일본(4.8배) 영국(4.4배) 미국(2.4배)보다 훨씬 높다. 생산활동으로 얻은 부를 한푼도 안 쓰고 7년 내내 모아야 부동산을 살 수 있다는 뜻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돈이 부동산에 묶였다는 의미다.
지금처럼 부동산 쏠림 구조를 방치할 경우 확장재정으로 나랏돈을 풀거나 통화정책을 완화해 유동성을 공급해도 생산활동과 주식시장 활성화를 기대하기가 힘들다. 부동산으로 더 많은 자금이 흘러가는 현상만 키울 수 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에 따라 안정된 성장을 이룬 미국을 봐도 성장률만 높을 뿐 가계와 기업에 막대한 부채가 쌓였고 유럽연합(EU)은 마이너스금리 회사채 규모가 폭증해 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2008년에는 재정지출, 원화 약세를 통한 수출확대로 위기를 돌파했지만 지금은 국제공조를 기대하기가 힘들고 정책수단이 대부분 고갈돼 위기감이 더 크다”고 진단했다.
첨부파일